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
출애굽기 19:1-12
2014-01-24 금요 새벽 설교
마침내 애굽을 나와서 이제 시내광야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고자 모세를 산위로 부르시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장면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그것이 예수 믿고 살게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구원 과정과 닮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노예되고 죄에 노예된 우리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서 새로운 생명과 신분을 갖고 살게 해주셨습니다. 마치 세례를 예식의 과정이 우리가 물 속에 있던 죽음에서 건져 올려져서 생명을 얻은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듯이 출애굽과정 또한 홍해 가운데를 건너 시내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으로 정점에 이르는 이야기의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 말씀을 읽고나서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전에 애굽의 노예로, 바로의 소유로 살던 사람들을 감히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스케일의 이적과 심판을 통해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내 소유가 되겠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인간적 의미에서 자유로움만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죄에서 자유함받은 것으로 구원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님께 속한 바 되는 것이 구원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자유라는 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모두 할 수 있는 어떤 소속도 책임도 없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지요? 출애굽의 구원과정 또한 애굽의 노예에서 풀려난 것으로만 끝이 난 것이 아닙니다. 애굽의 소유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에서 출애굽이 끝나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현대인들에게 누군가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매우 불편한 말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더이상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을 싫어하고 속박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것은 추구하지만 특정 종교에 소속되거나 교회에 나가지는 않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말은 그다지 흥미없는 일로 들리기 쉬운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은 아주 분명한 복음에 대한 사실을 간과해서 기인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유가 되던지 하나님의 소유가 되던지 둘 중 하나를 늘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6절 말씀에도,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고 기록하면서 18절 말씀에, “너희 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마찬가지로 머뭇거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는 내 소유가 되겠고…”
죄의 종이던지 의의 종이던지 둘 다 택할 수 있거나 중간에 남을 수는 없다는 것이 바울의 결론입니다. 마찬가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도 이 중대한 변화가 남아있었습니다. 애굽을 나와 그들이 노예된 것에서 해방되었다 할지라도 온전히 출애굽을 한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세워지기 전에는 그저 유랑하는 무리에 불과하여 언제 어디서든 다른 제국들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운명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세상의 노예로 살지 않는 단 한가지 방법은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의 소유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너는 내 소유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오늘 본문에 기록한대로 애굽을 심판하시고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여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단순히 내가 교회를 다닐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내가 세상의 노예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남는 방법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해야하는 문제로 남는 일입니다. 단 한번의 선택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순간 결정해야하는, 내 삶의 주권 (lordship)을 누구에게 드릴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너는 내 소유다. 내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매순간 반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매일 일나가며 집을 나설 때마다 ‘주님의 소유로 살겠습니다'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소유로 살아가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소유로 살기 원한다면 주님을 닮는 것이 우선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내게 주어진 봉사와 책임과 헌금을 아무리 잘 한다한들 주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주님의 소유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전에 5년만에 되찾아온 신장 결석으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고통스러워하다가 멀쩡히 안아프다를 한달여를 반복하다가 어제 아침에 돌이 몸밖으로 나왔습니다. (담임목사님과 다른 전도사님들이 안수기도해주었는데 응답해주셨나봅니다!) 그런데 이 돌이란 것이 1센트 동전보다도 작은 것인데 그렇게 큰 고통을 주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저는 귀한 영적 교훈을 얻었습니다. 내 몸에 속하지 않은 무언가가 내 속에 있을 때 그것이 그토록 큰 고통을 몸에 주고 몸의 기능을 떨어뜨리더라는 것입니다. 크기나 겉으로 보이는 위험성에 상관없이 내 몸에 속하지 않은 것은 결국 배출되기 마련이고, 그것이 단단하게 굳을 수록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 신앙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는 원리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하면서 주님의 소유로, 주님을 닮아서, 주님의 일부로 살아갈 수 없다면 그것은 나에게도 고통이요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문제를 야기하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모두가 다 한순간에 주님을 닮을 수 없다하더라도 우리 마음 속에 주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생각들과 방법들을 돌을 배출하듯이 내보내야합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수년 수십년간 쌓아오고 굳혀버린 삶의 방식들이나 생각들 고정관념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속하지 않은 돌은 결국 몸에서 나가야 하듯이, 우리가 주님의 소유되었음을 선포하고 거듭난 순간부터 우리 마음속에 주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이물질인 것입니다. 그것을 내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과 훈련을 거듭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주님을 닮아 주님과 같이 되겠다는 결심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사람들과 닿을 수 없는 절대적 타자성, 즉 너무나도 두렵고 이질적인 것으로 자주 묘사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로 하나님을 닮기 위해 살겠다는 결심이 결코 작은 사소한 결심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 살겠다는 것은 내가 어떤 훌륭한 위인을 본받아 살겠다는 정도 차원의 결단이 아닙니다. 주님의 소유로 살라는 그 부르심은 인간이 이뤄낼 수 없는 ‘거룩'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살라는 소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저히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거룩한 자신의 임재를 보여주시고, 너는 내 소유가 되어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연한 연결이 아닙니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거룩하니 너도 내 앞에서 거룩할찌어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을 보이시고 그리고 나서 우리를 그 거룩함으로 부르십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험하였을 때 우리를 압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온전하심 앞에 어떻게 감히 우리가 당신의 소유로 살겠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너는 내 소유가 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나는 할 수 없는데 주님은 그것을 요구하시고 부르시면서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을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소유로 산다는 것이 그래서 은혜입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소유로 산다는 것이 비상식적이고 불편한 일이라고 하나님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소유로 산다는 것은 본래 불가능하고 우리의 인간적 연약함으로 이룰 수 없는 놀라운 삶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 것이다라고 약속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그 부르심 앞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소유로 살기 시작할 때 오늘 나에게 구체적으로 일어날 변화들은 무엇일까요? 오늘 주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실 때 시내산에서 자신의 영광을 보이신 그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너를 내 소유가 되게 하겠다는 그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애굽의 노예처럼 세상의 속해 세상의 방법대로 세상의 소유물로 전락해버린 우리의 삶의 모습들이 있다면 너는 내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주님으로 부터 오지 않은 모든 삶의 이물질들을 내어버리시기 바랍니다. 그 결단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은혜 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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