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의 훈련
출애굽기 40장 12-38절 (봉독: 34-38절)
2014년 1월 31일 금요 새벽 설교
우리 교회는 올해의 표어가 "사도행전 29장- 주를 향한 위대한 도전” 입니다. 사도행전은 28장이 마지막 장인데, 우리가 익숙한 이야기들처럼 결론이나 끝맺음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은 진행형으로 끝이나고 있다는 것에서, 그래서 지금의 교회가 29장을 써내려가는 것이다라는 의미로 그 표어를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결말 또한 그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받아서 성막을 만들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나아가는 진행형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약속의 땅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여정으로 말하면, 종착역에 다다르지 않은 여정 도중에 있는 가운데, 그들이 불과 구름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라고 말씀하면서 책의 끝을 맺고 있습니다. 만약에 단순한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보는 사람들이 아쉬움을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결말이 시원하게 끝나야 좋아하시는 분들은 더욱 이같은 끝같지 않은 결말에 실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행형으로 마치고 있는 미완료의 결말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 순간 속에서 말씀을 읽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삶도 이처럼 아직 그 끝을 모르는 진행형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의 결말이 어찌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오늘이 중요한 것이고 앞으로의 일을 모른다는 두려움을 마음 속 한켠에 두고 오늘도 믿음의 발걸을을 떼야 하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기에 오늘 출애굽기의 끝나지 않은 결말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여정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도착하는 그 곳에 다다르기 전에는 늘 불안하고 불확실한 순간의 연속입니다. 신앙의 여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신 약속을 믿고 나아가지만 구체적으로 내일일이 어찌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가운데 강조하여 기록된 마지막 구절을 다시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 여정의 확실한 미래와 결말을 보진 못했지만 그들이 본 것이 있는데 그 “그들의 눈으로" 본 확실한 것이 무엇입니까? 회막위에 덮인 구름입니다. 그들이 성막을 다 짓고 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이 성막위에 충만이 임하였는데 구름이 떠오르면 그들이 나아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떠오를 때까지 멈춰서 나아가지 않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현재의 삶에서 앞으로의 일을 알지는 못하지만, 오늘 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확실히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요? 앞으로의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매일 나타나는 하나님의 확실한 인도하심을 분별하고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여정이라고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으면서 나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여러분도 교회에서 자주 부르는 찬양을 통해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시지요?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오늘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전진하고 멈춰서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한다는 것이 그래서 참으로 중요한 영적 훈련입니다. 말만 들으면 굉장히 거창해보이고 특별한 은사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로 보여지기 쉬운 것이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 분별하기라는 것은 능력이나 은사가 아니라 매일 우리가 행해야하는 연습이요 훈련입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한다는 것을 은사나 능력으로 생각한다면 “무엇이 주님의 뜻인가"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입니다. 마치 긴장한 수험생들이 무슨 학교에 원서를 넣을 것인가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요? 하고 묻는 것처럼 당장 내게 필요한 선택의 문제를 주님의 뜻을 통해 해결하려는 인간적 노력이 맞닿아 있는 것이 잘못된 주님의 뜻을 이해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을 묻는 것 자체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 정답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매순간 주님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분별하고자 한다는 것은, 내가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의 계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민감한 영성을 가지고 살겠다는 결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정해놓은 범주 안에서 마치 객관식 문제처럼 이미 정해지고 박스안에 갇혀진 주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은 사실 주님 자신보다는 정답에 더 관심있는 사람입니다. 내게 놓여진 선택을 내려줄 우상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은 정답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A가 하나님의 뜻이고 B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멈춰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뜻을 구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나는 사람이 좋은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를 비롯해서 많은 나라에 영성에 관한 저서들로 영향을 끼쳐온 헨리 나우웬은 그의 사후에야 출판된 그의 기록들 가운데서 ‘영적 분별이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각자의 삶 가운데 독특한 방법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적 분별이란 다른 말로,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역동적으로 선포하는 행위"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과 아주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오늘 주님의 뜻이 내게 확실이 들리지 않는다고 주님의 뜻을 구하고 분별하는 것을 멈출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묻고 구하는 것 자체에 핵심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주님의 뜻을 구할 때마다 내 마음이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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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nri Nouwen, Michael T. Christensen, and Rebecca Laird, Discernment (2013) 나우웬의 기록과 강의록을 편집해 사후 출판된 저서로 한국어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음 |
오스왈드 챔버스도 그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는 묵상집에서 말하였습니다. 나는 주님께 늘 응답을 구하는데 주님은 종종 내가 원하는 응답을 주시기보다 그 분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도, 하나님은 두려움과 불확실성 속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착할 땅이나 미래를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구름, 즉 자신의 영광과 임재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속의 땅 자체에 주목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도 그 목적은 바로 주님 자신에게 나아가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나 은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매일 우리가 연습해야할 영적 훈련이자 삶의 태도입니다. 매순간의 삶에서 나의 이기적인 욕심이 낳은 선택들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묻고 나아가는 것이 분별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물으면서 우리가 정답이 적인 선택지를 들고나가서야 되겠습니까? 내가 오늘 주님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내가 지금 모르는 상태, 즉 백지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아가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이성적으로, 경험적으로 최선이 있고 차선이 있고 최악이 있는 정해진 범주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늘 가정하고 나의 생각을 내려놓는 연습이 주님의 뜻을 구하는 훈련입니다. 주님이 선택할 수 있는 1번과 2번을 정해놓고 둘 중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하셔야 할까요?
주님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게 당장 결정해야할 선택의 문제가 찾아왔을 때만 필요한 행위가 아니라 매일의 삶속에서 우리가 구해야 할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님도 그의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 뜻을 묻고 구하고 분별하는 삶이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태도라는 것입니다. 영적분별에 대한 훈련과 습관을 매일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를 살펴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사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실천이 필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의 구름 임재로 인도함을 받기 전에 먼저 지어져야 했던 것은 회막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거할 처소로서의 회막은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가? 회막을 짓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오늘 40장에 나타나는데, 첫째는 제사장들이 세워지는 것이고, 두번째는 성막과 그 안의 모든 필요한 물건들이 준비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지체된 형제 자매들이 주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제사장들이 머리에 기름부음 받았던 것처럼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거룩하게 구별되어 주님 앞에 성결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인하여서 은혜로 말미암아 거룩한 구별을 받아 살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길 성막의 모든 구조와 그 안의 공간들이 준비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가운데 거룩한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거룩하고 신령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훈련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구별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고 묵상하는 자리, 내가 정해놓은 시간에 주님께 온전히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오늘 이시간 처럼 새벽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리가 그 거룩한 시간과 공간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에게는 집 안에 내가 늘 묵상하는 자리가 주님의 뜻을 구하는 회막일 수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이든지, 내가 상황에 매이지 않고 늘 지속적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경건의 비밀이 담긴 그 시간과 장소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그곳은 단지 나의 필요와 나를 위한 주님의 뜻만을 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내게 보내주신 많은 형제 자매들과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 주님의 임재 앞에서 우리 마음 속에 불러오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삶 가운데 주님의 뜻을 구하는 중보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머나먼 여정을 행진하여 갈 수 있었던 것이 매일 인도하시는 주님의 역사하심을 그들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뜻을 구하는 삶은 정답을 구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을 구하는 삶이고, 오늘 나를 인도하시는 그 주님을 구하는 것으로 인해 내일을 바라보고 계속 행진해 나가며 주님과 더욱 가까워 지는 것이 오늘 출애굽의 마지막에서 시사해주는 결말아닌 결말입니다. 끝나지 않은 결말임에도 은혜가 있고 소망이 생기는 이유는 그 주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이 오늘 내 삶도 굳건하게 붙들어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오늘 나를 향한, 내 주변을 향한,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하고 정하였다 할지라도 매일 묻고 분별하고 걸어가는 주님께 민감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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