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4, 2015

[설교] 꾸준히 걸어갈 힘 (욥 17:9)

꾸준히 걸어갈 힘
욥기 17장 9절
2015-09-03


사실 우리가 성경통독하면서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이 레위기나 민수기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사실 더 읽기 힘든 책은 욥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레위기나 민수기는 율법을 나열한 것이 많다보니까 와닿는 것이 쉽게 발견되지 않아서 어려운 것이지 이해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욥기는 주석학자들도 책의 처음과 맨 끝은 이해가 잘되는데 중간은 일관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말들을 자주 합니다. 그만큼 어려운 책이고, 주제도 무겁습니다. 고통을 묵상하면서 인생의 무상함과 의로움에 대해서 수많은 생각을 정리되지 않고 대화의 형식으로 계속 풀어 쓰듯이 기록되어 있다보니까 묵상하고 통독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욥기는 그래서 부분 부분을 다 완벽히 이해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전체적인 주제를 마음에 기억하면서 이 본문에서 내가 발견해야할 지혜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더 효과적인 묵상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속의 욥의 발언은 욥이 친구들의 변론을 듣고 또 반론을 펼치고 또 친구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 다시 대답하는 내용 가운데 나오는 부분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욥의 친구들은 소문난 지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욥에게 해준 말은 욥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욥이 왜 고난을 받게 되었는가에 대해 판단해주고 해석해주려고한 친구들의 말에 오히려 욥은 지치고 쇠하였습니다. 욥은 의롭게 살기 위해 누구보다 애쓰고 노력했던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서 이유없이 고통과 질고를 겪으면서 낙심을 하게 됩니다. 그의 지혜로운 친구들조차 그들의 조언 조차도 그를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도 욥처럼 완벽하게 살려고까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선을 행하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 낙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두번 일어나고 끝나는 어려움은 오히려 이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나를 어렵게 하는 상황들이 지속될 때, 나는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려고 하는데 자꾸 내 뒷덜미를 붙드는 것과 같은 어려움들이 있을 떄, 우리는 낙심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욥의 상태를 한단어로 요약한다면 바로 낙심입니다. 욥이 무너진 것은 의로움에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낙심에서 무너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낙심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방비가 되어 있습니까? 오늘 욥의 모습을 17장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1절부터 이릅니다.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낙심하면 제일먼저 일어나는 증상은 기운이 쇠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힘이 나지 않습니다. 에너지가 없습니다. 열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습니다. 나의 날이 다하였다.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다는 것은 이제 삶에서 기대나 소망이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낙심하면 소망이 없어집니다. 예배가 기대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소망하지 않게 됩니다. 무덤만 바라보고 사는 것같은 삶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낙심이 무서운 것입니다. 7절에서 욥은 또다시 이릅니다.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낙심하면 눈이 어두워 집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가 앞에 있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욥은 “나의 지체가 그림자 같구나”라고 말했습니다. 형체없는 그림자처럼 완전히 바닥에 드리워진 모습으로 나를 무너뜨리고 영적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낙심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3절에서 바울은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낙심하지 않는 것은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면서 반드시 기억해야할 영적 원리입니다. 힘들 수 있습니다. 간혹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면 안됩니다. 낙심이란 말이 무슨 뜻이죠? 마음이 아래로 떨어진다 (drop)는 뜻입니다.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낙심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주님 뜻대로 살고자 하지만, 오히려 그때문에 고통받고 어려운일이 더욱 생길 때 조차 낙심치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끊임없이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의 시선을 고정하고 살때 낙심이 나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무엇이 보입니까?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큰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핍박과 조롱을 견디시면서도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신 주님이 지키신 의인의 길이 보이게 됩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예수님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왜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해답이라고 보게 되는가? 그것은 욥의 고백들을 연속해서 읽어내려가다가 갑작스런 한구절이 불쑥 나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1절부터 8절까지 욥은 친구들의 허망한 조언과 자신의 지속되는 고통 때문에 죽음을 묵상하면서 낙심에 빠져있습니다. 자신의 낙심을 하염없이 하나님과 친구들 앞에 늘어놓는 주저리 주저리 말 속에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한 구절이 9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그리고나서 바로 10절부터는 다시 불평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번역도 한글 성경에는 이 문장의 시작이 그러므로...라고 나오는데 영어성경에는 but 그러나라고 나옵니다. 그 이야기는 무엇이냐면 번역한 사람들도 이 문장이 도대체 앞뒤문장과 어떻게 의미가 연결되는지 확실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원어에는 그리고라는 말과 그러나라는 말이 같은 접속사로 쓰이기 때문에 번역상으로 이것을 확정짓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욥의 불평가운데 불쑥 뛰어나온 이 구절이 저는 욥의 불평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자기 입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고백하게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저는 듭니다. “의인은 그길을 꾸준히 간다.” 이 말이 참 여운이 있는 말입니다. 길을 꾸준히 간다는 것은 일정하다는 것입니다. 신실하다는 말입니다. 어려움이 오든, 기쁜일이 생기든, 변함없이 매일 일정하게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걸어가며 주님 앞에 손이 깨끗하게 거룩함을 입은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하지요? 점점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한번에 갑자기 힘이 주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실하게 꾸준하게 한 걸음 한걸음 믿음으로 순종하고 걸어나갈 때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주님 지쳤어요. 주님 힘들어요’ 고백하면서도 순종하고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주님이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거룩한 순종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힘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욥의 고백을 예수님의 삶에 비추어 보면, 이 말씀이 더 잘 와닿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의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멸시하고 핍박하며 멀리하고 배신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예수님은 오늘 욥의 입술을 통해 고백하게 하신 말씀의 삶을 직접 증거하여 보이셨음을 알게 됩니다.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소명의 길을 꾸준히 가셨습니다. 그 길에서 조금도 치우치지 않고 매일 매일 걸어나가셨습니다. 낙심할 수 있었던 순간에도 예수님은 순종의 길을 가셨을 때 점점 힘을 얻어 마침내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은 멈추어 서지 않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에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낙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제자의 길에서, 순종의 길에서, 신앙 여정에서 낙심하지 않고 꾸준히 일정하게 신실하게 5년 10년 또는 20년만 걸어나갈 수 있다면, 우리 각자의 삶에서 맺어질 열매는 실로 엄청날 것입니다. 인스턴트의 순종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막상 좋아보여서 하는 순종은 누구나 얼마정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필요한 순종은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입니다. 꾸준히 갈 수 있는 지속성의 믿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낙심이라는 것의 벽을 반드시 뛰어넘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선할일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삶을 따라가면서 낙심을 피해갈 수 있는 영적인 장치가 여러분의 삶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낙심치 않도록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영적인 보호를 구하며 중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의인은 꾸준히 걸어가고 거룩함 가운데 점점 힘을 얻어가는 사람이라고 오늘 말씀은 이야기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삶을 살기 원합니다. 점점 힘을 얻어가는 사람. 점점 지쳐가고 시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며 살 때 점점 힘이 붙어지는 신앙인이 되기 원합니다. 내가 그 낙심의 자리에 있었다면, 오늘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겸손히 나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주님 이 낙심의 수렁에서 나를 끌어내 주시고 정오의 빛같이 일정하게 나를 비추시며 나를 강하게 하시는 주님의 임재로 나를 이끌어주세요. 오늘 말씀이 우리 믿음의 고백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꾸준히 걸어가고...이 말씀이 주는 여운이 오늘 우리 하루의 삶 가운데 오래 깊이 남아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