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11, 2014

[설교] 선히 여기시는 대로


진정한 회개의 마음: 선히 여기시는 대로...
사무엘하 15:25-30
2014년 4월 11일 금요새벽설교

오늘 묵상 교재의 본문인 사무엘하 13장에서 15장까지의 이야기는 다윗이 밧세바를 탐하여 저지른 일련의 죄들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다윗 가문에 미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겁간한 사건으로 인해 다윗의 가문 안에 혈전이 벌어졌습니다. “칼이 네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나단 선지자의 선고대로 그렇게 시작된 다윗 집안의 재난은 이어서 결국 압살롬이 헤브론을 거점으로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반역을 일으키는 것으로 정점을 찍게 됩니다. 사건이 하나 하나 전개 되어 나갈 때마다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철저히 자신의 죄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눈 앞에 보면서 상황이 자신의 집안을 넘어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지경으로 악화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그는 억장이 무너지는 심경이었을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그로부터 죄를 사함받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죄가 남긴 결과로 인해 일어난 깨어짐들을 바라보며 아파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다윗의 아파함이 어떤 아파함이었느냐는 것입니다. 일련의 사건들과 문제들을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정치적 위기를 불러올만한 상황들이었습니다. 다윗이 긴급히 나서서 해결하고 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해결방법을 모색하며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소리지를 법도 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속에 드러나는 다윗의 모습은 너무나 수동적입니다. 그는 어떤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일어나는 상황들 앞에 마치 손을 놓고 있는 듯 보입니다. 오히려 그의 신하 요압이 나서서 일을 해결해보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14:1-21). 다윗의 아파함이 어떤 것이었기에 그가 이처럼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이야기의 배경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일까? 세상적 기준에서 볼 때 다윗은 지금 좌절속에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무력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지금 이 모든 일들이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깨어진 것으로 인해 일어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인간적인 해결 방법이나 노력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다윗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철저히 인정한 그는 하나님께 어떤 데꾸도 없이, 또 인간적인 노력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시도도 없이 그 모든 죄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의 긍휼이 다시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는 다윗은 단순히 그 상황을 모면케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고 진정 하나님의 긍휼이 자신과 자신의 집안에 다시 찾아오기만을 침묵으로 고통속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자신과 자신의 집안, 그리고 나아가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기간을 지나면서 이제 고난주간을 바로 며칠 앞두고 있는 오늘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회개하는 마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회개의 태도란 어떤 것인가? 다윗의 상황 속에 제 자신을 대입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 제가 다윗이었다면 이렇게 기도했을 것 같아요. ‘하나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정말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설테니 제발 이 상황이 해결되게 해주십시요.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제가 정말 제대로 살겠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고백은 회개가 아니라는 것을 금새 깨닫게 됩니다. 회개가 아니라 위기의 모면을 바라는 기도인 것이지요. 참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보다는 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기도인 것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지금 칼바람이 부는 가문의 위기와 재난이 근본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 떠난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 근본문제임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윗은 무엇을 해야했을까요? 정답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죄인인 그가 스스로를 중재하고 중보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할 말이 없다는 옛말이 있지요. 정말 맞는 말입니다. 죄를 인정하고 나아가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중대한 범죄를 지은 사람이 재판정에 섰을 때 두가지 다른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경우는 ‘자신은 죄가 없다,’ ‘억울하다,’ 또는 정상참작을 요구하거나 끊임없이 자신을 변호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입니다. 대개 그런 경우는 정말 무죄하거나 억울한 사람이든지 아니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지 않는 사람인 경우입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의 심각성에 대해 깨닫고 있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누구를 의식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죄과 앞에 스스로 무너져 고뇌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윗은 지금 인식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죄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심판정 앞에 서있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할 말이 없습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심각한 죄의 무게 앞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온전한 항복으로 침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긍휼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다윗이 보여주고 있는 회개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구세군의 창설자인 윌리암 부스는 다음 세대 기독교의 가장 큰 위기는 "회개 없는 죄 용서, 거듭남 없는 구원, 성령 없는 교회, 지옥 없는 천국"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회개 없는 죄 용서"라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개 없는 죄 용서란 무엇입니까? 내가 죄인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령의 책망과 확증 (conviction)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내 안에 죄가 세상의 악과 불의에 얼마나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지, 내 죄의 무게와 그것이 가져온 또 가져올수 있는 결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면, 내가 정말 그 앞에 애통해하지 않고 그 회개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얼마전에 세례 교육을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세례는 내가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지요. 물 속에 들어가는 과정이 없이는 나오는 과정도 없습니다. 물 속에 깊이 내려가 내 죄의 무게를 경험하고 내가 죽는 것을 경험할 때 예수님의 손길이 나를 붙잡아 다시 물 밖으로 나를 일으키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사형의 선고를 받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우리가 예수님의 중보와 대속으로 살아나게 된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회개의 과정은 우리가 그 심판대 앞에서 침묵하고 애통하며 긍휼을 기다리는 단계입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자신의 도성을 버리고 피난하는 가운데 다윗은 자신을 따라온 제사장들과 언약궤를 성으로 돌려보냅니다.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참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상징입니다. 언약궤는 몇만의 군사보다 더 큰 힘이자 자신의 정통성을 내세우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민심이 언약궤를 따라간다는 것 또한 다윗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인간적인 술수와 정치적 해결방법을 완전히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항복의 손을 들고 있는 듯 보입니다. 다윗이 25절에 고백합니다.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옵소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지금 온전히 하나님의 긍휼에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돌아서지 않으시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기뻐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선히 여기시는대로,’ 다시 말해서 하나님 마음대로 자신을 처리하셔도 괜찮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온전한 자기 항복과 내려놓음 (self-abandonment)으로 나아가 그 긍휼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엎드린 모습입니다.

이제 고난 주간을 앞두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그 분 앞에 나아갈 것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에 대해 다시금 묵상하고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 예수님이라는 긍휼의 가치를 다시금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진정한 회개의 모습이 우리 신앙 안에 뿌리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미 회개하고 용서받은 죄를 가지고 다시 고민하고 붙드시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계속 되어가는 성화의 과정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나와 세상의 죄와 악에 대해 진정으로 아파하고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 스스로 무너져서 주님의 긍휼만을 바라보게 되는 그 회개자의 자세를 우리가 회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 자신의 잘못과 죄된 습관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볼 때 관영한 죄와 아픔들을 바라보고 회개할 수 있기 바랍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선한대로 행하셔도 좋습니다. 주님의 종은 여기 이렇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고 고백했던 다윗의 마음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회개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참된 회개는 내 죄와 그로 인해 드러난 심각한 결과들을 해결할 분은 하나님의 긍휼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분앞에 애통의 침묵으로 서는 것입니다. 나와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가신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그같은 가난함과 애통함의 마음을 품고 다가오는 한 주를 다윗의 침묵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