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에 응답하는 기도
사무엘상 1:27-2:7
2014년 3월 28일 금요새벽설교
‘한나의 기도'는 잘 아시는대로 성경의 많은 이야기 가운데서도, 특히 ‘기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기도에 관하여 생각해 볼 때마다 신앙의 위인들이나 영적 거인들의 기도나 그들의 기도 생활을 떠올리게 되기도 합니다만, 그보다 더 원초적으로 우리 한국 성도들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기도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자식을 위해 또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현대의 이성적으로 신학적으로 기복신앙이다 잘못된 신앙이다 판단한다 한들, 자기 삶 속의 애환은 모두 가슴에 묻어두면서도, 오로지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들이 없었다면, 그들의 기도가 아니었다면, 한국 교회와 우리 세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형편없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한국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한 것도 목사님들이 잘나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어머니들이 교회마다 가득차서 부르짖었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 아니겠어요? 한나의 기도를 따라 기도하는 어머니들이 한국 교회를 세운 것이라고 말해도 절대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이 요즘 같이 한국이며 이 곳 이민 사회며, 교회가 도전받고 힘들다는 이 시대에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신앙의 유산인 어머니의 기도, 한나의 기도를 다시금 재해석하고, 확인하고 회복하는 일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한나의 기도에 관한 오늘의 본문을 단순하게 정리한다면 첫번째는 기도해야할 상황이 나타나고, 둘째는 상황을 붙들고 기도하는 단계가 나타납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기억하시는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시는 단계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무엘상에 관해 주석을 쓴 월터부루그먼이라는 구약학자는 이 네가지 단계 모두의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본문이 기록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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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터 부루그먼, 사무엘상,하, 인터프리테이션 주석 시리즈 |
첫번째, 기도해야할 상황이 나타납니다. 1장 5-6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영어번역은 원문 그대로 표현하여 “여호와께서 그의 자궁을 닫으셨다.”라고 기록합니다. 두번째로, 한나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 제사장 엘리가 한나에게 확증을 줍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기도해서 구한 것을 주실 이가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세번째로 19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한나를] 생각하신지라.” 영어 번역으로는 여호와께서 그녀를 기억하셨다고 기록합니다. 한나의 기도를 듣고 기억하신 분이 또 하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마침내 27절에서 한나가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한 것을 허락하셨다/응답하셨다.’ 기도의 원인부터 결과까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이 주체라고 본문은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해할 소지가 있는 말씀이지요.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이 한나로 하여금 불행하게 하셨다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한나로 임신치 못하게 하셨다는 그 구절만 보았을 때는 그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문맥 안에서 한나의 기도의 모든 과정 가운데 그 중심되는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본문의 의도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이 말씀이 전하려고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든 그 문제의 상황 뿐 아니라 그로 비롯해 기도하게 된 과정들과 응답받게 된 모든 순간까지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다는 하나님의 전적인 임재에 대한 선포이자 고백을 오늘 본문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의 기도는 어떤 문제를 놓고 매달려 기도하는 간절함 그 뿐만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모든 상황 속에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라는 것을 끊임없이 선포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주님 이 사건 이 문제의 열쇠는 아무개 누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움직여주세요...’ 이와 같은 기도는 한나의 기도의 절반만 본받은 모습입니다. ‘이 문제의 열쇠는 오직 하나님 당신께만 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시작하는 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도전하고자 하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여호와께서 한나의 자궁을 닫으셨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도덕성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 중심과 핵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대해 획기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메세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도의 중심되는 초점이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내 모든 기도하는 상황의 중심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고백을 하였을 때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나의 ‘관점'의 변화입니다. 이 관점의 변화는 단순히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나에게 일어난 관점의 변화는 한나가 삶 전체를 바라보고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 자체가 바뀌어졌다는 데에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나서 한나가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이 상황을 바꾸어주셨습니다. 한나가 아들을 낳은 것이지요. 그런데 단순히 상황만 바뀐 것이 아니라 한나의 관점이 바뀌고 그의 속사람이 바뀌어버렸습니다. 분명 기도의 시작은 아들이 없어 괄시받던 괴로움 때문에 출발한 기도였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아들을 “소유"하게 됨으로써 괄시받던 상황을 역전해서 집안에서 인정받고 권력을 되찾는 것이 문제의 해결입니다. 그런데 기도응답을 받은 한나의 반응은 무엇이었나요? 한나는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아들이 없어서 기도했으면 아들이 있어야 문제의 해결이 되는 것이 인간적인 상식인데 한나는 이제 아들이 없어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나는 괴로운 기도의 시간을 지나면서 이제는 더이상 자신의 문제와 자신의 관점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나의 고백 가운데 “그러므로"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구하여 기도한바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하여 한나는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그의 평생을 드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나도 하나님께 뭔가를 드린다는 경제적인 교환 (give and take)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도가 상황만 바꾼 것이 아니라 한나도 바꿨습니다. 아들만이 인생의 해법이라고 믿던 한나는 이제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한나는 깨달았습니다. 2장에서 찬송기도가운데 고백하고 있습니다. ‘풍족하다가도 금새 빈곤해 질 수 있고 불임하다가도 임신하는 가 하면 많은 자녀를 두었다가도 쇠약해지는 것이 인생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상황은 언제고 변화될 수 있고 문제는 끊임없이 나를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확실한 인생의 해법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나가 드린 것은 아들뿐 아니라 아들의 평생, 즉 그의 전 인생을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자신보다 소중했을 아들을 드리는 고백 가운데 한나는 자신의 인생 전부도 드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내 삶을 드린다는 것은 단순히 내 소유를 바친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살겠다는 고백만이 세상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심지어는 하나님도 소유하고 싶다는, 정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한나의 기도는 첫번째로, 하나님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중심 가운데 있다는 고백에서 시작하는 기도입니다. 두번째로, 한나의 기도는 상황 뿐 아니라 한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기도였습니다. 기도의 시작과 기도의 끝 사이에 내 속사람이 달라지고 변화되어지는 과정이 있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문제와 상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던 모습에서 하나님께로 시선을 옮겼을 때 내가 변화되는 것을 경험해야 진정한 기도의 응답을 경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변화를 경험한 한나는 하나님의 응답에 더 큰 삶의 헌신으로 다시 하나님께 응답하는사람으로 성숙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기도의 초점은 문제와 상황에 매여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있습니까? 여러분이 기도한 후,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응답을 또 하시겠습니까?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고 또 헌신으로 그 응답에 응답하는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말씀하시고 교통키 원하시는 그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이 오늘도 만나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실 뿐 아니라 응답하신 것에 대해 우리의 응답을 또한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내가 이것을 해줬으니 너도 이만큼 해라'라는 보상적인 차원의 응답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소유로 살기 원한다는 우리 자신의 주님께 대한 헌신을 기다리고 계신 것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응답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